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리스 힐튼 (문단 편집) == 인기 == 81년생으로, 20대였던 2000년대에 절정의 전성기를 누렸다. 욕 먹는 만큼 인기도 많았다. 음반은 욕은 먹었을지언정 수십만 장씩 팔려 나갔고, 리얼리티 쇼는 항상 상위 시청률을 기록, 직접 디자인한 가방은 품절이었다. 그 인기의 비결은 '''하도 평판이 나빠서'''로 추정. [[패리스 힐튼 효과]] 항목 참조.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욕하다가 정들어서'''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존 매케인]]이 패리스 힐튼을 비방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긴 선거광고를 제작했다. 그러자 힐튼 가 전체가 들고 일어났고[* 힐튼 가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파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패리스 힐튼 역시 매케인을 대차게 까는 짝퉁 선거광고를 찍었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많은 패러디 선거 광고가 나왔다. 대표적으로 [[Diddy|디디]]가 유튜브에 올린 오바마 지지 영상이 당시 크게 흥행을 했다. 패리스 힐튼의 선거 광고 역시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이러한 오바마 지지 영상들은 소셜 미디어(유튜브) 등지에서 크게 흥행해 오바마의 당선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이 일로 보수적이고 [[기독교]]적 윤리관을 가진 계층이 주 지지층인 매케인 측의 타격이 컸고,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국 선거에서 졌다.[* 당시 여러 실책으로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던 [[조지 워커 부시]]의 영향도 컸고,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이 각종 실책을 벌이는 등 악재가 겹쳤다. --지금도 이들과 좋은 사이는 아니라고.-- 그래도 자신의 장례식 추도사를 W부시에게 맡겼다.] 이때 매케인이 베트남전 당시 장기투숙한 '하노이 힐튼'[*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포로수용소'''를 가리킨다. 매우 혹독한 수용환경 때문에 저런 반어적인 별명이 붙은 것. 매케인 자신도 이 당시 겪은 고문의 후유증 때문에 지금까지 팔을 쓰는 게 불편할 지경.]의 서비스가 형편없다고 엄청나게 화를 냈었다고 한다는 [[카더라 통신]]이 돌았다. 2010년대 들어서며 노출을 극히 자제하기 시작했고 관심도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패리스 총알받이설'''이 더욱더 흥하는 효과가 일어났다. 사실 요즘 뜨는 셀럽들은 전부 90년대 중후반~00년대 초반 출생이니 자연스레 시대적으로 밀려난 것이다. 게다가 전성기때 인간관계도 완전히 역전해서, 자신이 전성기 시절 [[하녀]]로 부려먹던 킴 카다시안은 대박을 터뜨리고 막장 타이틀 1위를 수렵하여 한창 떵떵 잘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크게 차이난다. 다만 패리스 본인은 이미 관종컨셉으로 얻을 수 있는 바를 다 얻었기에 셀럽 생활보다는 개인사업에만 집중하는 중. 현재는 정말 조용히 살고 있다.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어린이용 클럽 파티를 열어 어린이들을 초대하는 등 건전한 이미지 구축에 힘쓰고 있다. 그 외에는 거의 이비자에서 DJ를 하고 친구들이랑 놀러가거나 사업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2015년까지 힐튼 가의 승계 정리, 니키 힐튼의 혼인을 통한 로스차일드 가와 힐튼 가의 동맹관계 등이 정리된 상황이기 때문에, 힐튼 가의 정략결혼 다음 타자로 준비중인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왔었다. 다만 상술했듯이 과거 억울하게 유포된 성관계 비디오 때문에 상류층과의 정략 결혼은 사실상 힘들고, 최종적으로 2021년 작가 겸 사업가인 카터 리움과 연애 결혼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